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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Time/오늘의 묵상

2022.3.13 오늘의 묵상

About time&love 2022. 3. 13. 18:04

 바로 위 포스팅한 천국에 관한 목사님의 말씀을 듣고 적어봅니다.

 

 몇 년전 광야같은 삶을 살아가면서 삶은 고통뿐이라고 생각할 때가 있었습니다. 나름 신앙생활도 열심히 하고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한거 같은데 주님 이만하면 됐으니 데려가 달라고, 죽음을 바라던 때였습니다. 그런 저에게 천국이란 현실을 피할 도피처에 불과했고, 죽음은 고난을 피할 수단일 뿐이었습니다. 갈 수 있을지도 모르면서, '천국이 그렇게 좋다는데 얼른 가면 안되나?' 하던 저였습니다. 그만큼 힘들었으니까 했던 말이었지만, 죽음을 마치 리셋 버튼처럼 여기고 다시 시작하겠다는 마음이었음을 저는 압니다. 이 후로 제 마음과 상황은 조금 괜찮아졌지만, 여전히 힘들고 절망적인 상황이 닥쳤을 때 하나님께 매달려 기도하는 마음이 절반, '에이 그냥 죽으면 되지 천국가면 되는거 아니야?' 라는 마음이 절반이었습니다. 

 그러다 어제 '나는 천국을 얼마나, 어떻게 묵상하고 있는거지?'라는 생각이 갑자기 들어 묵상하게 됐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천국은 찬란하고 멋지고 좋은 것들 투성이고 그 곳에서는 고통과 슬픔도 없으며, 마냥 기쁘기만 한 곳인데. 반대로 지옥은 유황불에서 고통받고 계속 죽고 끔찍한 일들만 있는 곳이라 생각하니,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고 거듭나지 않는다고 아담 이후로 이 땅을 밟은 수 많은 사람들이 그 지옥에 있는다고?'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뭔가 찝찝했습니다. 그리고 천국에 대한 저만의 정의때문에 마냥 천국은 좋으니 이 땅에서의 삶보다 죽음을 찾게 되는 구조 역시 옳지 않다 생각했습니다. 오늘 목사님의 말씀을 듣고 천국과 지옥이 상상 속 판타지 월드가 아닌, 지금도 실제하고 실존하는 곳임을 배웁니다. 

 하나님께서 천국과 지옥이란 개념과 공간을 창조하신 목적을 생각하면서, 그 곳에 대한 소망은 간직하되 맹목적인 도피처가 되선 안된다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저는 어떻게 살아야합니까? 


 주님, 주님과 함께하는 시간들이 제게 참 기쁩니다. 행복하기도 하고 걱정, 근심이 없을 때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연약하여서 이 땅에 시선을 돌려 제게 없는 것들, 누리지 못하는 것들을 갖고 싶어합니다. 때론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렇게 제 멋대로 살다보면 그 삶이 옳지 않음을 깨닫습니다. 그런 방식으론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다시 하나님 앞으로 나아옵니다. 참 평안과 만족, 행복과 기쁨을 누리기 위해서 입니다. 어느 정도 되었다 생각된 삶을 살다가 또 넘어지고 하나님을 잠시 옆에 모셔두고 제 뜻대로 살아가곤 합니다. 벌써 이런 과정을 몇 번이나 반복한지 모르겠습니다. 지치기도 하지만, 하나님이 진리이심을 더 확고히 깨닫게 됩니다. 허나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란 걸 알기에 생각에 그치는 믿음이 아니라 살아서 행동하는 믿음이 되길 기도합니다.

 그래서 천국을 묵상했습니다. 제 멋대로 산다는 것은 지극히 현실만을 바라보고 현실의 욕구와 만족을 위한 것이어서, 제가 천국에 대한 소망과 바람과 묵상이 없는지 점검했습니다. 어느 순간 제게 천국은 목사님의 말씀처럼 죽음 이후 예수님께서 발급해주시는 티켓 들고 들어가는 놀이동산 같은 곳이었음을 고백합니다. 그 곳에서 하나님과 어떻게 관계 맺을 것인지 기대하고 설레하기 보다 마냥 좋은 곳에서 제 멋대로 즐기길 원했던 마음을 고백합니다. 진리되신 하나님과 영원히 거할 수 있는 그 곳을 싸구려 놀이동산으로 만들었습니다. 관계 속에서 제게 떨어질 이득과 콩고물에 눈이 먼 것입니다. 부끄럽습니다. 

 그러므로 이젠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 본질에 집중하길 원합니다. 분명 제게 베풀어주신 은혜에 대한 감사함은 확실히 알겠는데, 여전히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얼마전 묵상을 통해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할 수 있는지 조금 알게 됐지만 여전히 저는 하나님보다 저를 더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럼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2020년 6월 17일 이우대 목사님께서 만나교회 수요예배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이라는 주제로 설교하신 부분을 우연히 보고 은혜가 되어 나누려고 합니다. 

 

(1:03:30즈음부터 내용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게 뭘까요? 이런 질문을 안고 묵상한 말씀이 누가복음 7장 말씀입니다. 누가복음 7장 44절에서 47절말씀인데요. 

 

44 그 여자를 돌아보시며 시몬에게 이르시되 이 여자를 보느냐 내가 네 집에 들어올 때 너는 내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아니하였으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그 머리털로 닦았으며

45 너는 내게 입맞추지 아니하였으되 그는 내가 들어올 때로부터 내 발에 입맞추기를 그치지 아니하였으며

46 너는 내 머리에 감람유도 붓지 아니하였으되 그는 향유를 내 발에 부었느니라

47 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그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그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

 

 누가복음 7장의 상황은 바리새인 시몬 집에 예수님께서 식사 초청을 받아 제자들과 함께 식사에 가셨습니다. 그렇게 밥을 먹고 있는데, 죄 많은 여인 한분이 식사 자리로 들어오십니다. 남의 집인데 들어가서는 예수님 뒤로 가서는 예수님의 발을 닦는 겁니다. 눈물로 발을 닦고 귀한 향유를 깨서 붓고 머리털로 닦고 그 발에 입 맞추기를 그치지 않았데요. 식사에 예수님과 제자들을 초대했던 바리새인 시몬은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이 참된 선지자라면 자기 발을 지금 만지고 있는 저 여인이 얼마나 큰 죄인인지 얼마나 많은 죄를 지었는지를 알고 있었을 텐데.'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을 주님께서 아시고는 바리새인 시몬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시몬아 어떤 사람이 자기한테 백만원 빚진 사람이 있고, 천만원 빚진 사람이 있는데 둘다 갚을 형편이 되지 않아서 탕감해 주었단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이 사람을 더 사랑하겠니?' 라고 물어보았습니다. 바리새인 시몬은 많이 탕감 많은 사람입니다. '그래 네 말이 옳도다.' 그리고는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입니다. '그런데 너는 나를 식사 자리에 초대해놓고는 발씻을 물도 주지 않고 기름도 바르지 않았고, 입맞춤의 인사도 하지 않았다. 저 여인은 눈물로 발을 씻고 향유를 깨서 붓고, 머리카락으로 닦고 발에 입맞추기를 그치지 않는다.'

 그러면서 47절 말씀이 중요한데요. 이렇게 말씀합니다. 많은 죄가 사하여 진사람은 많이 사랑하고, 적게 용서를 받은 사람은 적게 사랑하느니라. 바리새인은 용서 받은게 없으니까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지만, 반대로 죄 많은 여인은 용서를 많이 받았으니 많이 사랑한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처음 든 생각은, 그렇지 결국에는 순리대로 가는구나. 결국에는 받은 만큼 돌려주는거지. 인지상정이지 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조금 더 묵상해보니 이 주님의 생각이 놀라운 거예요. 주님의 생각의 방향이 주님은 누가 더 사랑하겠느냐 라는 말을 누가 더 용서 받았느냐 라는 말과 매칭을 두고 있었습니다. 방향을 바꾸신 겁니다. 사랑하는 것, 나로 부터 나가는 것. 누가 더 사랑했느냐 이 말을 용서를 받았느냐? 누가 더 용서를 받았느냐, 네가 무엇을 받았느냐 라는 방향으로 바꾸신 겁니다. 내게서 나가는 방향에서 내가 받는 방향으로 바꾸셔서 얘기하는 겁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는 내가 무언가를 하나님께 제공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도움을 받는 것. 하나님의 용서를 받는 것.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주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우리가 주님을 위해 무언가를 드리고 헌신하고 섬기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주님께 받는 것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용서를 받고 도우심을 받고 사랑을 받는 것이 역설적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주님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누가 더 사랑하는가? 누가 더 용서 받았는가? 같은 말이라고 주님은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주님을 사랑한다는 말은 주님을 사랑하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해서 네 하나님을 사랑해라 라는 말씀은 전심으로 이 주님의 사랑을 받으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전심으로 주님을 의지하라고 주님은 말씀하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랑이 무엇인지 이렇게 말씀하기 때문입니다. 요한1서 4장 말씀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하나님이 사랑이십니다. 우리에게 마음을 다하여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해서 주 너의 하나님만 사랑해라 명령하신 그 분은 사랑 그 자체이신 분입니다. 그분에게 사랑이 있습니다. 우리가 아니라 그분에게 사랑이 있습니다. 그러니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을 내게 두지 말아라. 너는 나만 사랑해라 라고 말씀하신 그 말씀은 우리를 괴롭히려고 무거운 요구들을 우리에게 받아내시려고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가 사랑 그 자체이신 하나님으로부터 에너지를 얻고 힘을 얻고 그 사랑의 관계 속에서 생명을 얻고 이 하나님을 붙들기를 원하는 말씀입니다. 포도나무 가지가 줄기에서 떨어지면 말라 죽는 것처럼 물고기가 물 밖에서는 살아갈 수 없는 것처럼,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고 그 사랑안에 거하는 것만이 유일하게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힘입니다. 그러니 전심으로 주님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이 무언가를 필요해서 요구하시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우리가 온 마음을 다해 하나님이 필요함을 인정하고 그 도우심을 받길 원하시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지 못하는 자기 자신을 보면서 스스로에게 실망하며 무너질 때 주님께서는 '아니다. 내 아들아. 내가 너를 사랑한다. 너는 나에게 특별한 존재다. 너의 현실, 너의 실망감이 너의 진정한 모습이 아니다. 내가 너를 완성할 것은 그것이 너의 진정한 모습이다. 아직 너 자신에게 실망하기 이르다.' 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살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날 어떻게 생각하실까 생각해봤습니다. 그러면서 우리 애들을 생각해 봤어요. 저는 자녀들을 잘 사랑하지는 못하는 아빠지만 애들을 놓고 기도하면서 내가 우리 아이들에게 진짜 바라는 게 뭘까? 생각했는데, 우리 딸들이 스스로가 얼마나 사랑받고 특별한 존재인지를 확신하고 살아갔으면 좋겠다. 왜냐하면 오히려 우리 아이들이 저한테 잘못하고 서운하게 하고 실망시킬 때도 있겠죠. 근데 그런건 참아서 넘길 수 있을 거 같아요. 그런데 우리 아이들 스스로가 자기 자신이 특별하고 사랑받는 귀한 존재라는 것을 모르고, 자신의 삶을 가치 없게 여기고 아무렇게나 쓰레기 통에 버리는 일은 상상만으로도 너무 끔찍하더라구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이라는 제목의 천관웅 목사님의 1분 설교도 비슷하게 말씀하십니다.

 

"포기하려고 하는데 하나님은 한 쪽 편에 있는 그 선한 마음을 계속해서 동기부여하십니다. 나는 반드시 너의 찬양을 받고야 말거야. 이게 무슨 말입니까? 나는 너를 포기하지 않는다. 네 스스로의 힘으로 바꿀 수 없는 일을 내가 바꾸어 놓을 것이다. 나의 사랑은 인간의 조건적인 사랑과는 다른 사랑이란다. 내 아들의 파로 너와 맺은 관계는 영원한 관계니라. 너의 제어할 수 없는 욕망의 불을 끌 수 있는 방법은 네가 쓰러져 있는 그 때에도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란다.

 내가 큰 죄악을 저지른 다윗을 버렸더냐? 배신자 베드로를 버렸더냐? 탕자의 아버지가 돌아온 탕자를 내쫒더냐? 아니지 않더냐. 나는 너를 사랑하기로 작정했다. 내 아들의 피로 너를 샀기에 너는 영원히 내것이니라. 네가 은혜 안에 강건할 때도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고, 네가 죄악의 창살 안에 갇혀 있을 때도 여전히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란다. 이것이 내 사랑이니라. 내가 너를 싫어한다고 생각하지 말아라. 그리고 기억하라. 나는 엉망진창 만신창이를 아름다운 작품으로 만들어 낼수 있는 전능한 하나님 너의 아버지니라."


최근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할 수 있는지 묵상하면서 제게 최고의 것, 제일 좋아하는 것, 소중한 것을 드리는 것이 사랑이라는 결론을 맺었습니다. 헌데 그런 사랑은 완전할 수 없고, 무엇보다 지속가능성이 낮을 수 밖에 없는 사랑입니다. 사람은 그렇게 태어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배운 말씀처럼 우리가 그분을 사랑하는 방법은 그분의 사랑을 전심으로 받는 것 역시 포함되어 있음을 깨닫습니다. 사랑 그 자체이신 하나님께로부터 받는 것을 기억하고 감사하는 삶. 세상의 다른 것들을 의지하는게 아니라 전심으로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삶을 사는 제가 되길 소망합니다. 저의 어떠한 모습에도 사랑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합니다. 그 사랑을 믿고 오늘도 살아갑니다. 오늘도 함께 해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주일 예배도 문제 상황 없이 잘 마칠 수 있었고, 평안한 가운데 좋은 사람들과 동역할 수 있음이 은혜입니다. 그 놀라운 사랑에 감격하며 더 즐기고 더 감사하겠습니다. 어디 안갈께요. 하나님께 잘 붙어있을게요. 그것이 제가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또 하나의 사랑의 표현입니다. 사랑합니다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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